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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추 니엔

2012년 무렵에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The Critical Dictionary of Southeast Asia>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컨셉과 모티브, 전기가 프로젝트의 가장 초기 형태를 이루었는데 이 집합체로 저의 출신지인 동남아시아 지역을 재해석 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컨셉, 모티브, 전기는 사전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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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비평사전, 싱가포르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

호 추 니엔

발표 영상


 

발표 내용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호 추 니엔입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살며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프로젝트 일부와 그 과정들을 여러분께 공유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이용하여 작업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이 이미지들은 카메라로 촬영한 실사 이미지거나 컴퓨터로 생성한 그래픽입니다. 가끔은 두 가지를 모두 혼합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저는 다른 이들이 다른 목적으로 이미 생성해 놓은 푸티지를 재활용하여 새로운 목적에 맞도록 재구성합니다.


2003년부터 저는 영화와 설치물 그리고 공연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끊임없는 정진 덕분에 폭넓은 분야의 사람들과 다양한 기관과 국가에서 콜라보레이션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예로는 영화 제작진, 극장 디자이너, 실험 음악가, 테크니션,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 희곡 작가, 작가, 연구원 등이 있겠네요. 제가 계속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동력은 다양한 예술의 형식과 매체의 기술적이고, 관념적이며, 정치적인 잠재력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Ho Tzu Nyen, No Man II, 2017. Multimedia installation Video stills. Credits: Galerie Michael Janssen, Berlin.

제 프로젝트 중 다수가 역사적 사건, 글, 인물과의 조우에서 시작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 관심은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그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2년 무렵에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 The Critical Dictionary of Southeast Asia>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컨셉과 모티브, 전기가 프로젝트의 가장 초기 형태를 이루었는데 이 집합체로 저의 출신지인 동남아시아 지역을 재해석 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컨셉, 모티브, 전기는 사전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알파벳 순서로 배열되었습니다.


2017년, 저는 베를린 출신 아티스트 세바스티안 뤼트거트와 얀 게베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이 사전 개념의 창작물을 끊임없이 재생되는 영화로 만들었습니다.온전히 온라인에서 발견한 영상 소스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저희가 개발한 알고리즘 집합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됩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이 영화는 재생될 때 마다 달라지는데 편집과 재조합을 위한 파라미터는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의 일부로 자모에 기초하여 차례대로 생성됩니다.



자모의 예를 들면 Tiger의 T는 동남아시아 호랑이의 역사를 중심으로 회전합니다.

2013년부터 저는 호랑이에 대한 여러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는 극장 공연작인 <Ten Thousand Tigers>와 2015년에 제작한 영상 설치물 <2 or 3 Tigers>가 있습니다. 오늘 남은 제 강연 시간 동안에는 <2 or 3 Tigers>와 2020년 올해 초에 제작한 <Waiting>이란 작품 설명에 초첨을 맞추고자 합니다.


먼저 <Waiting>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 만들어진 <Waiting>은 리폰 차우두리와의 협업으로 시작되었는습니다. 그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출신의 시인 겸 작가, 블로거, 온라인 운동가입니다. 리폰은 2010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이민 노동자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는 6백만이 채 안 되는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약 30만 명 이상은 인도네시아나 방글라데시아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건설이나 제조업에 종사합니다.


2020년 4월 저는 한 런던 갤러리로부터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여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프로젝트는 여러 국가의 아티스트가 창작한 일련의 짧은 수필과 영상으로 구성되었는데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여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리폰에게 작품을 위탁할 의도로 이를 수락했습니다.


더 이야기 하기에 앞서 부가적인 설명을 드려야겠네요. 리폰과 만나기 일주일 정도 전에 싱가포르 정부는 2020년 4월 초 부분적인 국가 봉쇄령을 내렸고 그로 인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바이러스 확산은 대체로 통제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서는 매일 백 건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였습니다. 4월 중순부터 정부가 공표하는 일일 확진자 수는 확실히 두 자리 수로 늘어나게 됩니다. 특히 확진자는 외국 노동자의 지역 사회와 바이러스 확산이 빠른 집단 거주지에서 확연하게 증가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싱가포르는 단일 국가로 대변될 수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하나의 융합된 나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안에서부터 분열되고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2020년 8월, 외국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증가했습니다. 집단 거주지에서의 오랜 격리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그 원인이었죠. 자살을 행했거나 시도한 이들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2020년 4월, 저는 리폰과 프로젝트에 관해 논의하게 되었고 전 리폰에게 그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에 관심이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에게 시간에 관한 시를 부탁할 수 있냐고 물었지요. 이렇게 <Waiting>이 탄생했습니다.


리폰은 아무래도 그가 집단 거주지에 격리되어 있다보니 촬영 범위가 제한적이고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장면도 많지 않을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한계를 영상 제작의 파라미터로 전환 해 보자고 협의했지요. 격

리라는 것은 영상의 주제일 뿐 아니라 형식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즉, 집단 거주지 내부를 중간 개입 없이 롱테이크로 촬영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후작업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드는데 편집을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고 다수의 촬영 장면을 선택할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시퀀스에 포함할 장면들을 골라내는 편집 과정 없이 길고 길 시퀀스로 구성되었습니다. 장면들이 인위적으로 사건을 포착한다기 보다 사건 스스로가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렇듯 장면에 개입이 없다 보니 격리 공간에 대한 인지가 가능해졌고 리폰의 리듬에 대한 감각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미지에서 느끼는 모든 흔들림과 떨림은 그의 신경계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끊김 없이 긴 이 장면들이 리폰이 기다리며 보낸 시간의 구체적인 단면인 것입니다.


두 번쨰로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작품은 2017년의 <One or Several Tigers> 초기 버전인 2015년도 작품 <2 or 3 Tigers>입니다. 두 작품 모두 서로 마주보는 두 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스크린 하나에는 호랑이가, 다른 하나에는 인간이 있습니다. 호랑이와 인간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제작되었고 호랑이와 인간 모두 이중창을 부르며 빈 공간을 떠돌아다닙니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수백 년에 걸친 호랑이와 인간과의 관계를 압축시켜 보여줍니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스크린 사이의 공간에 잡혀 어느 쪽에서 상대를 바라볼지 선택함에 따라 인간 아니면 호랑이의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원래 호랑이는 백만 년 이상 전에 동남아시아 전역에 분포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가 순다 대륙붕 즉,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 있었을 때 말이죠. 이는 곧 동남아시아에서 호랑이는 현대 인류보다 앞서 존재했다는 것인데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것이 겨우 2-30만 년 전이고 아프리카 대륙에 분포한 것이 7-10만 년 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기 동남아시아인들은 물활론적인 우주관으로 나름대로 호랑이의 존재가 인류보다 우선함을 깨달아 호랑이를 마치 선조와 같은 존재로 선조의 영혼을 담고 나르는 영매라 여겼습니다.


이러한 인간과 호랑이의 밀접한 관계로 사람들은 점점 벽은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지고, 지붕은 인간의 머리카락으로 이은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호랑이는 호수나 강을 건널 때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고도 합니다. 이를 듣고 저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가 한때 동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물 안의 물'과 같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물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거의 모든 초기 신화에 등장합니다. 상태의 변화를 촉진하는 변성의 윤활제, 즉 경계적 요소입니다.


만약 탈바꿈하고자 하는 인호(Weretiger) 근처에 물이 가까이 없다면 공중제비를 세 번 하고, 공중에 물과 소용돌이의 상징인 만자를 그려 지하 세계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One or Several Tigers>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사람은 1865년 독일 아티스트 하인리히 루테만이 제작한 <싱가포르 도로 조사 중단됨>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이 판화는 1835년 싱가포르에서 발생한 실제 사건을 다룬 것으로 당시 유럽인들의 감비아와 후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농장을 만들고자 실시했던 도로 조사가 갑자기 뛰쳐나온 호랑이에 의해 중단되었던 사건입니다. 기적적으로 아무도 다친 이는 없었고 판화 중앙에 있는 경위의라는 토플링 기구만 살짝 부서졌다고 전해집니다. 경위의는 공간의 수평면과 수직면의 각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된 도구로, 합리적인 공간 사용을 계획하는데 필요합니다.


Heinrich Leutemann, Unterbrochene Straßenmessung auf Singapore (Interrupted Road Surveying in Singapore), c. 1865, Wood engraving on paper, Collection of the National Museum of Singapore.

이 도구는 조지 드롬골드 콜먼이라는 측량사에게 필수적인 도구였다고 합니다. 그는 <One or Several Tigers>와 <2 or 3 Tigers>에서 호랑이 맞은 편에 있는 인물입니다. 아일랜드계인 조지 드롬골드 콜먼은 매우 뛰어난 토목 건축가 및 토지 개간자였습니다. 1833년 콜먼은 싱가포르의 공공 사업 감독관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그는 바다와 강 습지 등 대규모의 대지를 매립하여 싱가포르의 도시를 확장하는 책무를 맡게 됩니다. 또 그는 고대 팔라디오풍의 여러 유명한 건물들을 설계하였는데 그 중 가장 알려진 건물은 싱가포르 최초의 교회인 세인트 앤드류스입니다. 하지만 콜먼은 동시에 싱가포르 재소자 감독관이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싱가포르의 식민지 시절에는 공공 사업을 담당한 기술자와 건축자들에게 교도소까지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바로 교도소는 공공 사업을 구축하는데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수들의 대부분은 인도인들로 대영제국의 타 식민지에서 유배를 선고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유배를 선고받은 자들은 평생 노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죄수 노동자들은 공공 사업 전반에 투입되어 습지를 배수하고, 도로를 건설하며, 심지어 조사 부서에서도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측량가 조수 및 보조원, 토지 측정원 등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1835년 토지 조사 때 콜먼의 수행원을 구성했던 이들도 바로 이 인도인 죄수 노동자였습니다. 바로 호랑이에 의해 중단된 그 조사 말이죠.


식민지 시대의 싱가포르 형벌 제도는 죄수들의 높은 생산성으로 진보적이라는 평판이 있었습니다.

증기식 제재소와 제조용 퍼그밀을 최초로 도입한 곳도 감옥이라고 합니다. 또한 교도소에는 인쇄기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죄수들은 이를 이용하여 여러 관청의 다양한 문서들을 인쇄하고 제본하였습니다. J.F.A. 맥네어는 전임자인 콜먼과 마찬가지로 공공 사업 엔지니어, 매니저인 동시에 싱가포르 재소자 감독관이었고, <재소자, 그들의 교도관은 자신>라는 회고록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회고록에서 맥네어는 싱가포르 형벌 제도의 철학을 기술하였습니다. 죄수들은 보상과 승급에서 동기를 얻어 서로를 감시한다는 내용이었지요.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죄수는 동료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감시인으로 승급시키고 종국에는 식민지의 시민이 되도록 놓아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어쨋든, 싱가포르의 첫 교회를 포함하여 콜먼이 설계한 건물을 지은 사람들은 이 죄수들이었습니다. 1844년, 벽돌 가격이 치솟았을 때, 식민지 행정부는 죄수들에게 공공 건물에 사용할 벽돌을 생산하도록 했습니다. 1860년, 공사 노역에 배치된 죄수들은 건물의 완공이 다가오자 그 형태를 보고 그제서야 자신들이 짓고 있던 건물이 바로 그들 미래의 감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 이제 끝으로, 여러분을 과거에서 미래로, 즉 우리의 현재로 소환하겠습니다. 2020년 4월 가디언지는 싱가포르 봉쇄 기간 동안 집단 거주지에서 격리된 이주 노동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후환이 두려워 익명을 요구했던 이 노동자의 말은 이것입니다.


"마치 감옥에 갇힌 것 같아요, 너무 힘듭니다“


 

발표자 소개

호 추 니엔의 예술적 실천은 영화와 멀티미디어 설치를 아우르며, 다큐멘터리와 연극 그리고 미술과 철학 및 아카이브 자료 등과 같은 이미지와 사건을 통해 역사적인 서사의 구성에 대해 탐구한다. 원래의 시각적 자료들과 전유된 이미지들은 고국 싱가포르의 식민주의와 종교에 대한 복잡한 명상으로, 구름과 같은 개념에 대한 추상적인 사유로 수렴되곤 한다. 환경과 장소 반응성 또한 그의 작업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으로 작업의 맥락을 인식하는 방식은 한 사람의 시각 경험 자체를 바꿀 수 있다. 호 추 니엔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싱가포르관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상파올루 비엔날레를 비롯한 수 많은 뮤지엄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칸 영화제와 선댄스 영화제 등에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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